파사성지(사적 제 251호) > 여주풍경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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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파사성지(사적 제 251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성우 작성일 :10-07-29 22:18 조회 : 2,472회    댓글 : 2건 

위치 : 대신면 천서리 산9

파사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한 파사산성은 성벽 등이 비교적 많이남아 있으며, 둘레는 약 935. 5m 정도이며 성벽 중 최고 높은 곳은 6.25m나 되나 낮은 곳은 1.4 m 되는 곳도있다.
천서리를 면한 동문지, 금사면 이포리를 면한 남문지에는 문앵을 세웠던 고주형초석 22기와 평주 초석이 남았고 동문지에는 옹성문지가 남아 있다.
남한강에 연하여 있어 성일부는 강언덕에 돌출된 자리를 잡아 남한강의 상하류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해발 250m 정상을 중심으로 하여 5각형 둘레로 경사가 가파른 곳을 이용하여 석재로 축성하였다.
주위는 약 943m 동문은 송촌리를 향하고 남문은 당남리와 남한강변의 흥천면 계신리를 향하였다.
축성년대가 삼한시대라는데는 의심이 없는것 같으나, 신라가 파사왕 2년에 쌓았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파사왕 2년 당시에는 이곳이 신라의 영역에 속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임진왜란에 경기 방어사 변응성이 파사성을 수리하여 도성의 상류를 견고히 하자고 주청하였으나 역사가 방대하여 속히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가 황해도 승군총섭 의암으로 하여금 유승을 모아 수축하게 하여 1595년에 수리를 마치고여기에 금강루를 짓고 배, 군기를 모두 갖추고 엄연한 관방을 이루었다고 기록하였다.

여주군에서는 일찍부터 주목 받아온 중요한 산성인 이파사성의 보수정비를 위해 먼저 기전매장연구원에 발굴조사를 의뢰하였다.
발굴조사결과 파사성은 내외협축으로 축성된 돌로 만든 성으로, 암반층을 기반층으로 하여 다듬은 직사각형의 돌을 이용한 초축성벽과 부정형의 쪼개진 돌을 이용한 추축성벽이 있는데, 이는 여러시기에 걸쳐 수축되어 오늘날의 구조를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 구조물로는 치 3개소, 문지 2개소, 우물지 1개소, 수구지 1개소 등이 있다.
이번 조사 결과 파사성은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성벽조사중 출토된 삼국시대 유물은 대부분 신라로 추정되는 토기류였으며,축성기법 또한 신라의 산성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사성의 위치가 강언덕에 자리잡은 교통의 요지임을 감안할 때 백제에 의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굴조사자는 보고 있다

문의 : 031-880-1067

 
 

댓글목록

박희정님의 댓글

박희정   |   작성일

  와- 다음에 저랑도 같이 가요~

박성우님의 댓글

박성우   |   작성일

  오~!
우리 큰딸이 들렸구나.
그래. 다음에 집에 오면 함께 가 보도록 하자.
건강하구......잘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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